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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김일제 死後 7대에 걸쳐 漢 왕실서 중용....정순태칼럼
  글쓴이
   운영자
  날짜   2010-06-27[19:13]  count : 1708  IP :

 김일제 死後 7대에 걸쳐 漢 왕실서 중용

 

 이제, 김일제의 후손들이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배경을 잠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김일제가 죽은 뒤에도 그의 자손들은 7대에 걸쳐 漢의 황실에서 중용되었다. 昭帝(소제) 시대에 霍光(곽광)은 3인의 탁고지신 중 1人인 上官桀(상관걸)과 그 일족을 족멸하고 막강한 권력을 장악했다. 곽광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소제가 21세의 나이로 죽었다.

  곽광은 李夫人(흉노에 항복한 李廣利의 여동생) 소생의 昌邑王(창읍왕)을 새 황제로 맞아들였으나 즉위식도 하기 전에 창읍왕의 음란․포악한 성격이 드러나 폐위해버렸다.

 곽광에 의해 새로 황제로 옹립된 劉病己(유병기)는, 무제의 황태자였으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劉據(유거)의 손자였다. 황태자 據(거)의 실각 때 그 가족은 주살되었지만, 생후 수개월에 불과한 病己만은 옥에 수용되어 女죄수의 젖을 먹으며 연명했다. 九死一生을 얻어 출옥한 病己는 외조모의 친정인 史씨 집의 보호를 받았고 성장한 후에는 許氏의 딸과 결혼했다. 病己가 바로 前漢(전한)을 중흥시킨 宣帝(선제)이다.

 즉위 초, 선제는 곽광이 입궐하면 자기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퇴궐할 때는 처마 끝까지 따라 나가 배웅하는 등 몸조심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곽광의 처가 許황후를 폐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넣으려고 했다. 선제는 이때만은 “糟糠之妻(조강지처:고생을 함께 한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許황후는 끝내 독살당하고, 곽광의 딸이 황후로 입궁했다.  

 곽광은 전권을 휘두른 지 20년이 되는 宣帝 6년(BC 68)에 병사했다. 곽광이 죽자 선제는 마침내 실력을 발휘했다. 독살당한 許황후 소생의 奭(석)을 황태자로 세운 것이다. 이것은 요로를 장악하고 있었던 곽씨 일족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곽광 생전의 비행과 곽광의 처가 범한 許황후의 독살 사건 등이 잇달아 폭로되었다. 궁지에 빠진 곽씨 일족은 역모를 도모했다. 이때 김일제의 동생 金侖(김륜)의 아들인 金安相(김안상)은 여전히 宣帝의 신임을 받아 內朝의 요직에 앉아 있었다. 김안상은 곽광의 딸을 아내로 데리고 있었는데, 상황이 霍(곽)씨 일족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녀와 이혼해 버렸다.

 선제는 BC 66년 霍씨의 일족을 族滅(족멸)했다. 이런 피바람 속에서 김일제의 후손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宣帝는 민간에서 자라 세상물정에 밝았기 때문에 위민정치에 성공했다.  그의 在位 시기에 무제가 망친 漢의 경제가 되살아났다.

 선제의 시대에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北道의 도시국가들을 지배하고 있던 흉노의 日逐王(일축왕)이 漢에 귀순해 왔다. 그 결과, 漢은 오아시스 南道와 北道를 함께 장악하게 되어 西方에의 교통로를 확보했다.

 흉노인들은 혹한으로 인한 가축들의 떼죽음으로 곤궁해졌고, 이런 상황에서 선우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내전까지 벌어졌다. 드디어 呼韓耶(호한야) 선우가 漢에 入朝(입조:신하가 됐음을 뜻함)를 했다. 이때가 바로 宣帝의 治世(치세)이다. 양국간의 합의사항은  長城(장성)을 漢과 흉노의 국경으로 정하고, 흉노는 漢에 대해 신하의 禮(예)를 취해 장성의 방비를 맡고, 이에 대해 漢은 宗室(종실)의 여성을 선우의 妻로 내리고, 또한 매년 다액의 물자를 선우에게 증여하기로 했다. 王昭君(왕소군)과 호한야 선우의 혼인은 이런 타협의 결과였다.

 선제는 18세에 즉위하여 43세로 죽기까지 25년간 재위했는데, 한나라가 태평을 구가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유교의 德治(덕치)만을 맹신한 선제의 아들 元帝(원제) 때 漢의 국세가 크게 기울기 시작한다. BC 8년, 元帝의 황후 王씨의 친정 조카인 王莽(왕망)이 大司馬(대사마)가 되어 정권을 독점했다.          

 김일제의 후손은 왕망과의 인연으로 급변한다. 왕망은 김일제의 증손 當(당)의 이모부였다. 왕망은 서기 5년에 平帝를 살해하고, 서기 8년에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新(신)이라 했다. 왕망이 황제가 되자 외가인 김씨 가문도 활짝 피었다.

 그러나 新은 15년 만에 멸망했다. 儒敎(유교) 원칙주의자 왕망은 반군의 칼을 맞고도 경전의 구절을 외우며 숨을 거두었다. 김일제 家門도 피의 숙청을 피할 수 없었다. 김일제의 후손들은 遼西․遼東․한반도의 서북․ 일본의 큐슈(九州)․오키나와로 도망갔고, 그 일파가 경주로 들어온 金閼智(김알지)라는 설도 있다.

 

 

<<사진- 오수전>>



 한반도의 서북부, 金海, 제주 지방 등에서 발견되는 五銖錢(오수전) 등을 들어서 王莽(왕망) 세력이 국외로 도피할 때 가져 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三國志> 東夷傳(동이전)에 실린 ‘辰韓(진한)의 秦人(진인)’이 바로 김일제의 후손들이라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戰國七雄(전국7웅)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성립시킨 秦(진)의 宗室도 中原의 나라들로부터는 흉노족와 마찬가지로 夷狄(이적)으로 판단되었다.

 신라 김씨의 선조가 묻힌 경주 大陵苑(대릉원)의 積石木槨墳(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은 북방 유목기마민족의 墓制(묘제)이다. 대릉원의 98호 고분(황남대총) 155호 고분(天馬冢) 등에서는 금관․금귀고리․금팔찌․금가락지․금허리띠․금제 보검 등 황금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신라인들은 흉노 등 유목기마민족과 마찬가지로 황금을 좋아했다. 定住(정주)하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간편하게 몸에 붙이고 다닐 수 있는 황금 제품을 선호했던 것이다.

 



 유목기마민족이 휴대용 술잔 또는 물잔으로 사용했던 角杯(각배)도 한반도에서는 신라․가야의 故地(고지)에서만 발굴되었다. 부여의 계통을 잇는 고구려․백제의 故地에서 각배가 발굴된 사례가 없다.

 

 영웅들도 흘려보낸 黃河의 도도한 물결

 

  우리 일행은 무위市로 되돌아와 武威박물관에 들려 西夏의 碑(비) 등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西夏는 오로도스와 감숙성 전부를 차지한 티베트계 탕구트(당항) 족의 국가로서 당시 최강의 기마민족정복국가 遼(요)와 함께 北宋으로부터 막대한 비단․돈․茶를 歲幣(세폐)로 받아냈던 강한 나라였다.

 

 

<<사진- 무위에서 난주 가는 길>>



 4월15일, 우리 답사단은 감숙성의 성도인 蘭州(난주)를 향해 武威를 출발했다. 해발 3562m인 烏鞘嶺(오초령) 구간의 고속도로는 길이 누더기처럼 패여 오가는 차량들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西난주 톨게이트로 진입해 난주시로 진입했다. 현재 인구 260만인 난주는 석유화학공업을 기간산업으로 하는 도시이다. 西난주의 석유화학공단 앞을 지날 때 잠시 지독한 냄새가 났다.

 

<<사진- 란주시 란주철교>>



 난주 시가지는 黃河(황하)를 끼고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있다. 황하 북안은 최근 개발되고 있는 신도시다. 하서주랑의 날씨는 이른 早春의 寒氣(한기)를 느꼈지만, 이날 난주는 라일락 등 봄꽃이 활짝 핀 무르녹은 봄날이었다.   

 우리 일행은 ‘황하의 女神像(여신상)’이 그녀의 풍만한 육체를 자랑하는 황하 남안의 유원지에서 북안의 백탑산 정상까지 운행되는 케이블카를 탔다. <<사진-풍만한 황하의 여신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황하의 누런 황토색 물결은 수천년 역사를 推動(추동)한 黃河문명의 젖줄에 걸맞게 참으로 滔滔(도도)했다. 이름 모를 河中島(하중도)는 요염한 여인의 나체처럼 빛났다.

 

<<사진-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황하와 백탑산>>   



 백탑산에는 불교 사찰 백탑사와 이슬람교 사원인 淸眞寺(청진사)가 들어서 있다. 백탑산 정상의 정자에 들어가서는 중국 최대의 민족종교인 道敎의 즉석 집회 현장과 마주쳤다. 수수했지만, 세련된 양장의 여인이 선 자세로 무슨 노래를 부르고, 그녀를 둘러싼 20여 명의 남녀가 그 노래의 후렴을 불러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巫女(무녀)의 주술처럼 가락에 실은 辭說(사설)이 흘러나왔다. 필자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자신의  손으로 온갖 제스처를 구사하더니 손가락으로 간혹 하늘을 가리키고 땅도 가리켰다. 오페라 가수를 뺨 치는 듯 그녀의 노래는 30분을 넘어섰다. 그녀의 목소리가 허스키로 변하자 신도들은 그녀에게 물병을 건네 주었다.

 목을 추기는 것도 잠시, 그녀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그녀의 눈은 젖어들더니만 어느덧 흐느끼며 노래했다. 신도들도 따라 흐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마신 물보다 더 많은 量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엇인가 애원하듯 절규했다. 노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필자도 일종의 엑스타시에 젖어 들고 있었다. 동료들이 들어와 필자의 등을 치며 일깨운 후에야 그녀의 노래를 뒤로 하고 下山했다. 문득 “靑天(漢왕조)은 기울고 黃天(황천)의 세상이 온다-甲子年에 大吉(대길)”이라던 後漢末의 黃巾軍(황건군)의 구호가 떠올랐다. 그들도 중국 제1의 민중종교 道敎 계통의 신자들이었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국가 中國도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한 지 불과 30년 만에 ‘배 부르게 먹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 앞으로 더욱 다양한 정치․사회적 욕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사진- 난주, 황하 선착장의 羊皮뗏목>>



  이번에는 선착장으로 내려가 ‘羊皮(양피) 뗏목’을 타고 황하 북안으로 건너갔다. 양피 뗏목이란 羊의 몸통에 공기를 팽팽하게 불어넣은 것 여러 개를 밑바닥에 매달아 놓은 뗏목이다. 황하의 물결이 거세 양피 뗏목은 황하를 대각선으로 떠나려가며 도하했다. 젊은 船頭(선두)는 힘껏 삿대질을 하여 양피 뗏목을 겨우 북안 선착장에 접안시켰다.

 4월16일 오전 9시, 필자는 난주의 감숙성 박물관에 입장했다. 감숙성 박물관은 실크로드의 향기가 그득하다.

 

<<사진- 감숙성 박물관에 전시된 銅(동)마차 의장대와 銅奔馬(동분마)>> 

 

현재 수장품이 10만여 점인데, 彩陶(채도)·木簡(목간)·金屬器(금속기) 등 국보급 문물이 많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무위市  雷臺(뇌대)에서 발견된‘銅마차 儀仗隊(의장대)’의 선두에 서 있는 ‘銅奔馬(동분마)’이다. 제비를 밟고 하늘을 질주하는 이 造型(조형)은 漢 무제가 탐을 내던 汗血馬(한혈마)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감숙성 박물관 관람 후 五泉山(오천산)으로 올라갔다. 곽거병이 땅에 검을 꽂았더니 다섯 군데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전설에 따라 五泉山이란 이름이 붙었다. <<오천산의 곽거병像>>

 옛 이름이 金城郡(금성군)인 난주는 여러 인종․종교․문화가 섞인 잡탕의 도시다. 이곳엔 新疆(신강)·靑海·內몽골로부터의 철로도 집중되어 있다.  점심으로 이름난 ‘난주 국수’를 먹었다. 짜고 매운 맛이다. 4월16일 밤 10시40분, 우리 일행을 태운 北京行  CA 여객기가 난주 공항을 이륙했다.*

                    

[ 2010-05-24, 08:27 ] 조회수 :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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