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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임실군 지사 고인돌 군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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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2010-06-07[18:11]  count : 1782  IP :
임실군 지사 고인돌 군 답사

(1)산촌마을 최대 집단 고인돌 군 발견

(2)농경문화 발전으로 이어지는 산촌 집단 주거지로 추정

(3)북방식, 남방식, 개석식 고인돌이 혼제된 문화지역으로 보존과 연구가 필요한 곳이다.

2007년 10월 5일 금요일 맑음, 10월 24일 수요일 맑음

연구자: 안동립 (동아지도 대표, 고인돌사학회 총무부회장),

자 문: 이형석 (교육학박사, 현 고인돌사랑회 회장, 고조선역사문화재단 부회장)

이종호 (현 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수, 전 프랑스 뻬르삐냥대학 박사)

우실하 (현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전 요령대학교 교수 연세대사회학과박사)





연구기록 안동립

개 황



1)지사면의 위치

동경 127‘ 22 북위 35’35‘ 동쪽으로는 남원시 보절면 천황산909m, 상서산627m, 장수군 산서면 개동산845m, 비행기재, 팔공산1151m, 북쪽으로는 임실군 성수면 영대산666m, 오봉산 서쪽으로는 성수면 아침재430m, 옥녀봉475m, 덕재산483m, 남쪽으로는 오수천이 흐른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사면 은 남북15km 동서9km로 남쪽으로 섬진강 상류로 성수산875m에서 발원한 오수천 지류로 지사천이 넓은 들판을 가운데로 흘러 평야를 이루고 평균 해발 150m로 고랭지 작물이 잘 자라는 전형적인 산촌마을로 농업지역이다.



2)개황 : 고조선 시대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이 집단으로 발견된 임실군 지사면 옥산마을, 광암마을 일대는 사방이 고산지대로 인근 전주 남원 지역에 집단 고인돌이 발견되지 않고 섬진강을 따라 올라온 남방식과 북방식이 혼제된 고인돌 군으로 약 2,500년-5,000년 전 청동기 유적으로 산촌마을 농경지역에서 살았던 고조선 시대의 선사 유적지로 아주 중요한 자료로 현제 많은 훼손과 이동 등 관리가 되지 않고 있어 철저한 관리 및 보존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지역 고인돌 군을 관찰하여 보면 발굴시 유물이 나올 확률이 많으며 족장 사회의 계급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상으로 간주된 이후 고인돌 사회에 있어서 계급 분화와 같은 사회적 속성을 고고학 자료로 당시 사회의 규모와 생활환경, 위계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유지로 고인돌과 취락 유적의 개별 연구 및 그 상관관계 연구하는데 많은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다.



이 곳 야산 집단 고인돌군은 지사천 넓은 들에 위치하여 고조선 사회의 군장의 위상을 가늠케 하며 상당한 힘과 집단을 거느린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의 무덤으로 보인다. 연구와 철저한 관리로 고창 고인돌 군, 화순 고인돌 군과 연계하여 볼 때 민족의 이동과 문화에 대하여 단서를 제공해줄 엄청난 선사 문화재를 발견한 것이다.



답사 지역은 계산리로 옥산마을과 바위거리, 광암마을, 관기리 관기마을을 돌아보았다. 이 지역을 둘러보면 넓은 들판에 농경사회를 이루고 집단 취락을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고조선시대 청동기 유적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안동립

지사고인돌 현 황

1)지도상의 위치와 현황(번호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곳)

2) 58번 위치한 광암마을 고인돌 군 동경127‘20.598 북위35’33.628 고도145m

(크기=가로2.48m, 세로1.55m 두께= 43cm, 높이= cm)

설명: 지사 고인돌 군의 대표적인 고인돌 덮개돌로 일명 담배입 바위로도 불린다. 돌 모서리 상단에 성혈이 3-5곳에 있으며 성혈의 지름 12cm 깊이6cm 정도로 매우 큰 것과 지름 7cm, 지름 4cm 등 작은 성혈들이 보여 진다. 성혈이 발견된 것은 이 지역이 집단 고인돌군락이라는 확실히 증명해주는 것이다. 성혈은 전국적으로 고인돌에서 고루 발견되며 뚜렷하게 모양이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성혈은 다산의 상징으로 선사인 들이 구멍을 파 놓은 것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별자리들 표시하여 북두칠성을 새긴 곳도 있고 천문도처럼 많은 별자리를 동시에 새긴 곳도 있다. 선사인 들의 농경을 위하여 별자리를 관측하였다는 증거이다.

이 지역에서 성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군장의 다산을 상징한 듯하며 비교적 큰 규모의 집단 주거지인 것으로 보여진다.

치석(마제)이 많이 된 것 으로 보아 청동기 후기 유적 고인돌로 추정되며(2500-3500년) 길옆에 방치되어있다. 도로 공사로 회손이 많이되있고 보존이 시급하다. 지역 주민들이 버리지 않고 잘 보존하여 다행으로 생각한다.

3) 57번 위치한 옥산 고인돌 군 북방식 고인돌 형식인 탁자형 동경127‘20.598 북위35’33.628 고도165m (크기=가로2.72m, 세로2.28m 두께=43cm, 높이=67cm)

설명: 북방식 고인돌로 탁자식 모양을 하고있다. 남방식 고인돌이 주종을 이루는 이곳 고인돌군에 북방식이 혼제된 것은 많은 문화적인 가치를 생각하게한다. 북부지방에서 생성된 고조선이 남으로 이동하여 정착한 것으로 보여진다. 고인돌 왼쪽에서 소나무가 자라 괸돌이 위로 솟아서 왼쪽이 내려앉아 있었고 비교적 원형이 살아있었다.

내부 석실 안은 무너져있고 석곽널판으로 추정되는 돌 널판이 여러장 보였다. 산촌 지역에 거주했던 선사인의 생활상을 보여줄 것으로 석곽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고인돌의 위쪽은 자연석 형태로 있고 아래 부분을 둥글게 치석(마제)이되어있다. 연대는 약 3,000-4000년으로 보였고 관리와 보존이 아쉬웠다.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발굴시 탄화된 곡식이나 뼛조각 토기 등 유물이 나올 확률이 많아보였다.

4) 62번 위치한 광암 고인돌 군 동경127‘20.651 북위35’33.759 고도150m

(크기=가로 3.65m, 세로2.88m 두께= 25cm, 높이= 80cm)

설명: 남방식 고인돌로 바북판식 이지역 최대 고인돌로 바닥 괸돌이 사각형으로 가운데에 있다. 지사 고인돌군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거북등 모양으로 등이 둥글게 형성되어있으며 기울어져있다. 이 지역 고인돌의 특징인 잘 보여주고있고 바닥 배 부분은치석(마제)을 하여 잘 정리 되어있어 청동기 중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고조선시대 약 3,000-4500년으로 보인다.

5) 62번 앞에 위치한 대형 돼지입 모양 자연석

(크기=가로 m, 세로 m 두께= cm, 높이= cm)

6) 59번 위치한 광암 고인돌 군 동경127‘20.502 북위35’33.854 고도150m

(크기=가로 3.30m, 세로 2.1m ,두께= 20cm, 높이= )

설명: 개석식 남방식 고인돌로 괸돌은 없고 고인돌의 덥게 부분만있다. 거북형으로 크기는 작으나 형태가 거북형고인돌로 머리부분은 북쪽으로 꼬리부분은 남쪽으로 향하여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형 고인돌이 있는것으로 보아 군장의 장수를 빈것같다. 57번과 등 모양은 비슷하였다. 위치가 이동된 것 같다.

7) 56번 위치한 옥산 고인돌 군 동경127‘20.598 북위35’33.628 고도160m

(크기=가로 3.51m, 세로 3.16m 두께= 77cm, 높이= cm)

설명: 옥산마을앞 절터산 초입에 위치하고있으며 오각형 모양을 하고있으며 바닥이 침하되어 절반 갈라져있다. 마을에서는 무명씨바위라고 부른다. 워낙 정교하게 치석(마제)이 되어있어 바둑판처럼 평평하다. 후기 고인돌로 추정되며 상단과 측면을 도구를 이용하여 직선으로 다듬어서 정교하게 만들어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부분이 갈라져서 보존이 시급하다. 2000년-3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8) 61번 위치한 옥산 고인돌 군 동경127‘20.460 북위35’33.810 고도150m

(크기=가로 3.60m, 세로 1.60m 두께= 62cm, 높이= cm)

설명: 남방식 고인돌로 논둑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 절터앞에 있었던것으로 후대에 훼손이 많이되고 깨어져있고 위치가 이동된 것으로 보여진다. 성혈을 찾을 수 없었으나 치석(마제)이 것으로 보아 조사를 하면 성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58번과 연대가 비슷한 것 같다. 조사와 복원이 절실하다.

9) 63번 위치한 광암 고인돌 군 동경127‘20.410 북위35’33.522 고도150m

(크기=가로 m, 세로 m 두께= cm, 높이= cm)

설명: 고인돌로 추정이 되나 석축으로 사용이되어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야산 정상 부근 묘지 앞에 세워져 있다. 마을 이장의 말에 따르면 원래 야산 정상부에 있던 것을 묘지 조성 중에 석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하였다.

큰 돌 3개있으며 이돌의 측면과 밑면이 잘 다듬어진 것으로 볼 때 후기 고인돌로 추정이 된다. 발굴하여 원상 복귀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63번 고인돌 위쪽 야산 언덕에 있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작은 돌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덕재산 풍경으로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10) 60번 위치한 옥산 고인돌 군 동경127‘20.458 북위35’33.854 고도150m

(크기=가로 m, 세로 m 두께= cm, 높이= cm)

설명: 개석식으로 남방식 고인돌로 추정 거북등 모양의 고인돌로. 규모는 작으나 이 지역 고인돌 특징을 담고 있다. 뒷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규모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래 배 부분은 치석(마제)을 한 흔적이있다. 정확한 판정을 위하여 발굴이 필요한 곳이다..

조성 년대는 청동기 초기로 보여지며 3500-4500년으로 추정된다.

11) 선돌(장군바위) 자연석에 새겨진 성혈자리(만석군이 나는 바위)

설명: 만석꾼이 나는 부자마을을 기원하는 바위로 일명 장군바위라고 불리운다.관기리에 위치하며 약 15cm크기의 성혈과 작은 성혈들이 여러 개가 보였다.

이 지역 수호신처럼 모셔지는 장군바위는 괸돌이 없고 큰 자연석으로 보여졌다.

아쉬운 점은 길을내면서 돌 모서리가 깨 졌는데 그 자리에 성혈이 여러개가있는데 성혈이 잘려나간 것이 아쉽다. 보존과 보호가 팡요하다. .

12) 60번 위치한 절터산 정상 바위군 동경127‘20.458 북위35’33.854 고도180m

설명: 옥산 마을 앞산 정상부로 절터산이라부른다. 정상에 아름다운 바위군락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괸돌이 있고 측면에 마제가 된흔적이있어나 자연석으로 보여진다. 회고대 반환정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활용:

1)고인돌을 테마로하는 청소년 체험 코스 개발

2)고인돌 그리기 대회(유지원 부터)

3)전주 - 남원 연계 관광 코스로 산촌 고인돌 관광

4)대학교 연구과제 및 발굴사업

5)농민 소득 증대를 위한 도농 고인돌 사랑회 조직

6)전문가와 함께하는 정기적으로 교육 프로그렘 실시

7)지역주민 자긍심 고취

8)지역 축제 행사에 연계하여 행사를 치른다. 단독적인 축제도 고려해 볼만하다.

9)고조선 시대의 청동기 문화 사업으로 적은 투자로 큰 홍보 효과를 볼 수있다.

등 연구과제이다.........



고인돌에관하여 이형석 박사가 운영하는 고인돌 사학회 의 설명문

한반도의 고인돌은 생업 경제의 형태가 농경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단계에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채집으로부터 벗어나 농경에 대한 의존도가 보다 높아지면서 안정적인 농경 단계에 도달한 청동기인들은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들어서게 되었다.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생업경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생활 방식의 변화와 함께 시간과 공간 및 경관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고인돌을 포함한 환호취락 등의 청동기 시대 축조물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그것을 축조하였다는 것은 당시 청동기인들이 주변 환경을 해석하고 또 그것을 변경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농경사회의 진전에 따라 청동기시대인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관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의 방식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그에 대한 실천의 능력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전이 공간과 그를 이용하는 방식뿐 아니라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 변화가 고인돌군을 축조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한반도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 군을 살펴보면 거대한 공동 모역이나 단독 묘역으로써 특정한 범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금동 유적의 경우 해발 50m 전후의 등고선을 따라 거대한 공동 묘역이 형성되어 있으며, 창원 덕천리 고인돌의 경우 단독이지만 거대한 묘역이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농경민들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관에 대한 관념은 채집인 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농경사회의 물질문화 가운데 기념물과 같은 것은 의례를 통해 축조되고 존속함으로써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기념물들은 취락 및 경작지와 함께 일정한 공간적인 단위를 점유하면서 존속했다. 그 공간을 공유하고 그 공간에 의존하는 구성원들은 농경의 공동작업과 상호교환에 의해 사회집단화 되고 기념물의 공유를 통해 그 정체성이 재정의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취락이 소멸하여도 기념물은 그 장소에 남아서 오래도록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념물이 바로 고인돌인 것이다.



□ 청동기 시대의 무덤 양식

인류가 인위적으로 시신을 묻기 시작한 때는 중기 구석기시대부터로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무덤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얕은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매장한 뒤 약간의 돌을 모아 덮는 정도의 간단한 구조의 움무덤을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무덤의 형태가 정형화되고 꾸며지게 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묘제로는 고인돌(支石墓)·돌무지무덤(積石총)·돌널무덤(石棺墓)·돌덧널무덤(石槨墓)·독무덤(甕棺墓) 등이 있다.



- 고인돌(支石墓)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 돌무지 무덤(積石墓)

지면에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묘역을 만든 무덤이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나타난 묘제이다.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돌무지 무덤은 시체 위에 흙을 덮는 대신 돌을 쌓아 올리는 가장 원시적인 모습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돌무지 무덤은 전시대와 달리 규모도 커지고 정교해져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삼국시대 돌무지 무덤으로는 석촌동 3호분이 있다. 석촌동 3호분은 동서 55.5m 남북 43.7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백제 초기 묘제이다.



- 돌널무덤(石棺墓)

돌널무덤은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이다. 돌널무덤은 돌로 널을 만들어 시신을 묻는 무덤으로 매장시설에 사용된 석재의 성격에 따라 바닥·벽·뚜껑을 1매씩의 판석으로 조립한 전형적인 상자형과 2매 이상의 판석을 이어 만든 것, 판석과 깬돌 또는 냇돌을 섞어서 만든 것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돌널무덤에 묻혀진 부장품으로는 마제석검이나 석촉·비파형 단검 등이 있다.

이 묘제는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지만 고인돌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다. 땅속에 돌널을 묻고 그 위에는 흙을 조금 덮어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흔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함경북도 지방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서해및 남해의 연해지역과 큰 하천의 유역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전라도. 황해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다. 그러나 동해지방으로 가면 그 분포가 희박해지며 산악지대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위치는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 근처로 결국 우리나라 고인돌은 서해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는 상황은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서북지방의 경우를 보면 1,2기의 고인돌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대부분은 5,6기 내지 10여기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1백~2백여기씩 무리를 지어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고인돌의 분포지역은 북쪽으로는 중국 만리장성을 경계로 하여 그 동쪽인 요령지방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요동반도에서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북쪽 끝으로 압록강을 건너 그 지류인 평안북도 독로강 유역을 거치며, 마천령을 넘고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극히 일부는 두만강 하류지역까지 분포되어 있다. 이 한계선을 북단으로 하여 그 남쪽으로는 한반도 전역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동해의 울릉도에서는 고인돌이 전혀 없으며, 그 대신 돌무지로 둘러싸인 나들이(횡혈식) 돌방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강화도, 진도, 완도, 제주도를 비롯한 서남해의 도서지방에서도 고인돌을 많이 볼 수 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동아시아에서의 고인돌 분포를 보게 되면, 한반도 전역을 본거지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황해 연안인 강화도, 황해도, 요동반도에서는 탁자식 고인돌이 집중되어 있고, 전북 고창을 주요 거점으로 하는 서해안 지역과 제주도를 비롯하여 승주, 여천, 등지의 남해안을 거쳐 다시 동남해안의 경북 영일까지 이어지는 해안지역에서 대형 바둑판식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어, 한반도의 동남해안 지역이 또 다른 고인돌의 본거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남한지역에서 깊은 산간 내륙지방에서도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지만, 유독 한강 이남에서부터 충남 서산의 태안반도, 군산, 김제, 목포 등지의 평야지역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분포로 보면 고인돌이 조성되는 시기의 해안선은 지금보다 상당히 내륙으로 들어와 있었고, 지금의 평야지역 대부분이 뻘로 뒤덮여 있었거나, 수심이 낮은 바다로서 교통이 불편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남해를 건너서는 일본 구주의 서북지방과 중국의 연해지방에서도 볼수 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 구주에서는 그 양식이 대부분 한반도 남해안에서 볼 수 있는 개석식과 바둑판식 고인돌로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산동반도에서도 소수의 대형 탁자식 고인돌이 발견된다고 하며, 그 남쪽으로 복건성, 사천성에서도 발견된다고 하지만, 아직 정확한 자료를 구할 수 없어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러나 호남성에서 바둑판식 고인돌 1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하며, 사천성(四川省) 서쪽으로 티벳(Tibet) 지역에서도 믹닝(Miegning), 다추(Tachu), 이룽(Yilung)에서 요월대(邀月臺)라고 부르는 대형 고인돌이 여러개 있다고 한다. 또한 절강성 서안시 대석산에서는 30여기가 발견되었으며, 기반산에서도 상당수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또한 서안에서 멀지 않은 평양(平陽)에서도 고인돌이 발견된다고 한다. 대석산에서 발굴된 고인돌에서는 상대(商代) 자기부터 진대의 가지달린 창까지 출토되고 있어,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의 오랜 기간에 걸쳐 고인돌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양식이 사람 키보다 낮은 높이로 대형 덮개돌이 5개의 뽀족굄돌 위에 올려진 바둑판식 고인돌이거나, 또는 제주도에서 보이는 위석식 고인돌처럼 덮개돌 아래에 굄돌이나 판석을 둘러 놓은 것도 있다고 한다



선돌(立石)이란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수목적을 가지고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지방에 따라 할머니탑·할아버지탑·할미바위·장수지팡이·돌장승·쇠뿔미륵·수구막이·수살장군·미륵부처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선돌은 대부분 단독으로 마을 어귀 같은 평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낮은 구릉위나 비탈에 세워지기도 하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돌과 바로 인접되어있는 곳도 있다.

선돌은 '신앙의 대상물'로써 알려져 왔지만 정확한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선돌의 외형적 형태가 남근과 닮았기 때문에 원시인들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의견과 한 집단의 영역을 표시하는 표지석이라는 의견들이 있다. 아직까지는 선돌이 갖는 단순한 구조의 특성 때문에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고, 다만 재래신앙과 관련하여 민속학적인 연구가 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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