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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요하 일대 소하서문화/ 흥륭와문화를 중화문명의 기원지로
  글쓴이
   운영자
  날짜   2010-06-07[17:54]  count : 2609  IP :
요하 일대 소하서문화/ 흥륭와문화를 중화문명의 기원지로

1980년대 이후에 요하 일대에서 하모도문화보다 이르고 앞선 문명을 자랑하는 신석기 유적들이 대량으로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의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6500- ), 흥륭와문화(兴隆洼文化: B.C. 6200- B.C. 5500) 등은 동북아 전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른 시기의 신석기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신석기문화를 바탕으로 국가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홍산문화(紅山文化: B.C. 4000/3500- B.C. 2500)가 꽃피게 된다. 최근 중국학자들은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모두 광의의 ‘홍산문화’라고 일컫기도 한다. 요하일대의 여러 신석기문화 유적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론하기로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는 황하나 장강 지역보다도 빠르고 앞선 것이었다. 하상주단대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 역사관련 공정들을 통해서 중국은 이 요하 일대에서 중화문명이 발생했다고 보기 시작했다. 곧 중화문명이 요하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하문명론’이다.

전통적으로 요하일대는 만리장성 밖으로, 중국의 사서에서는 그동안 문명화된 중화민족이 아닌 야만적인 북적(北狄)과 동이(東夷)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현대 고고학은 이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가 중원의 것보다 훨씬 앞서고 발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여러 이유로 이 요하 지역을 놓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첫째, 만일 요하 일대의 신석기문화를 북적과 동이의 문화권으로 보면, 야만족이라고 비하하던 이들이 전통적인 중화민족보다 앞선 문명을 지닌 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중화문명탐원공정을 통해서 요하 일대뿐만이 아니라 동북 만주 일대의 모든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곧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족의 후예라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신화시대를 역사화하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단군, 웅녀, 주몽을 비롯한 모든 동북 만주지역의 소수민족은 자연히 황제족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둘째, 많은 중국학자들은 요하 일대에서 남하한 이들이 상(商)나라는 세운다고 보아 왔고, 요하 일대의 주도세력은 예·맥 계열이라고 보아 왔다. 이 예·맥 계열의 민족들은 후대의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하 유역의 신석기문명이 중원보다 앞선다는 것이 드러나면 중국문명은 요하문명의 지류나 방계 문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중화문명의 기원을 요하 일대로 옮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요하 지역 주요 신석기문화>

그렇다면 동아시아 고대사를 송두리째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요하문명론’은 진정으로 그것을 뒷밭침할 만한 고고학적 물증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요하 일대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으로 세우려는 중국의 입장을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유물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하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명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고고학적 유물들이 최근에도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을 신화적인 인물이 황제족의 후예로 보고, 이들 모두를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의 일원이었다고 보는 역사해석의 시각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상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먼저 요하 일대의 주요 신석기문화를 이른 시기부터 간략하게 정리하기로 한다.



1)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6500- ):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문화 유적’

2004년 7월 24일부터 홍산문화의 중심도시인 적봉시(赤峰市) 적봉학원(우리나라의 대학: 필자주)에서 열린 <제1회 홍산문화국제학술연토회>에서 중요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중국의 류국상(刘国祥)은 이 학술발표회에서, 1987년 내몽고에서 발견된 ‘소하서문화 유적’이 기원전 6500년까지 올라가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内蒙古新闻网 2004-08-26 13:58 (来源:新华网)



기존에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은 뒤에 보게 될 흥륭와문화(B.C. 6200- )였다. 소하서문화가 기존의 흥륭와문화보다 약 300년이 앞선다는 것이다.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 장강(=양자강) 하류의 하모도문화보다 1500년 이상 앞서는 신석기문화가 요하 일대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소하서문화에 대한 것은 2004년에 처음 발표된 것이어서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2) 흥륭와문화(兴隆洼文化: B.C. 6200-5500):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 발굴

적봉시(赤峰市) 오한치(敖汉旗) 보국토향(宝国吐乡) 인근의 흥륭와문화는 기원전 62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 유적이다. 앞서 설명한 소하서문화가 발견되고 이것이 기원전 6500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흥륭와문화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었다. 흥륭와문하는 1982년에 발견되어 1996년에 국가급문물보호단위가 되었으며, 2001년 5월부터 대대적인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이 발굴을 통해서 현재까지 1000여개의 방 유적지, 회갱(灰坑) 30개가 발굴되었다.

흥륭와문화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이라는 명예는 소하서문화에 내주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흥륭와문화에서, (1) ‘세계 최초의 옥(玉) 귀걸이’가 발굴되었고, (2) 현재의 중국 국경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신석기 집단 주거지인 ‘중화원고제일촌(中華遠古第一村)’, 혹은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흥륭와문화에서 발굴된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에 사용된 옥은 심양시에서도 동쪽으로 3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요녕성 수암(岫岩)에서 나오는 ‘수암옥’임이 밝혀졌다. 이것은 흥륭와문화 시대인 기원전 6000년경에 이미 만주 벌판 서쪽과 동쪽이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것은 요하 일대의 신석기를 주도한 세력이 예·맥족과 연결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3) 사해문화(查海文化: B.C. 5600- )

사해문화는 요녕성 서부 의무려산 동쪽의 부신(阜新) 몽고족자치현에서 1982년에 발견되었다. 1982년 이후 현재까지 7차례의 고고발굴이 이루어졌고, 발굴 면적 7600 평방미터, 방 유적지 30여 곳, 도기가 200여 점이 발굴되었다. 유적지 전체는 3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특히 사해유적에서는, (1) 돌로 쌓은 용형상물인 석소룡(石塑龙)과 도기 파편의 부조 용문양이 발굴되어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라 불리며, (2) 흥륭와에서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제일옥(世界第一玉)’이 발견된 지역이며, (3) 흥륭와에서 ‘중화제일촌(中華第一村)’이 발견되기 전까지 ‘요하제일촌(遼河第一村)’으로 불리던 집단 주거지가 발견된 중요 유적지다.

사해유지박물관(査海遺址博物館)



(1) ‘세계제일옥(世界第一玉)’ 발굴(1982)

사해유적에서는 20여 점의 옥기(비수, 도끼, 관옥, 구슬, 귀걸이, 화살촉 등)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사해문화보다 조금 앞서는 흥륭와문화(兴隆洼文化: B.C. 6200- )에서 ‘세계 최초의 옥(玉) 귀걸이’가 발굴되기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으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사해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각종 옥기



(2)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의 발굴(1982)

사해문화 유적지에서 1982년에 발굴된 용형상물은, (1) 기원전 5600년경의 것으로 돌을 쌓아 용형상물을 만든 석소룡(石塑龙) 혹은 파소룡(摆塑龙), (2) 기원전 5600년경 용형상의 부조(浮彫)가 남아 있는 용문도편(龍紋陶片) 등 이다. 이 석소룡은 길이 20미터, 넓이 1-2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이를 통해서 중국학자들은 요하일대가 ‘용문화’의 기원지라는 것을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사해문화의 석소룡(石塑龙)



(3) ‘요하제일촌(遼河第一村)’의 발굴(1982)

사해문화 유적지에서는 앞서 살펴본 흥륭와문화의 ‘중화제일촌(中華第一村)’이 발굴되기 이전까지는 ‘요하제일촌(遼河第一村)’으로 불렸다.

<자료 9> 사해문화의 석소룡(石塑龙) 주변의 집단 주거지 유적

4) 조보구문화(赵宝沟文化: B.C. 5000- ):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의 발굴

조부구문화는 적봉시 오한치(敖汉旗) 고가와포향(高家窝铺乡) 초보구촌(赵宝沟村)에서 발견된 신석기문화이다. 9만 평방미터의 유적지에서 방 유적지와 회갱이 140여개가 발굴되었다. 이 조보구문화가 주목받는 것은 중국인들에 의해서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으로 명명된 최초의 봉황모양의 토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최초의 집단 주거지와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용과 봉황의 원형이 모두 요하 유역에서 발굴된 것이다.

조보구문화에서 발굴된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 토기



5) 홍산문화( B.C. 4000/3500 - B.C. 2500 ):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의 발굴

홍산문화는 기원전 4000년 혹은 35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로, 내몽고와 요녕성의 접경지역인 적봉(赤峰), 조양(朝陽), 능원(陵源), 객나(喀喇), 건평(建平) 등을 중심으로 유적지들이 분포한다.(아래의 지도 참조).

1971년 내몽고 적봉시 북부의 옹우특치(翁牛特旗)에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용 모양의 옥기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1982년에 푸신(阜新)의 사해문화(査海文化: B.C. 5600 - ) 유적지에서는 돌로 쌓아 만든 용 형상물이 발견되기 전까지 학자들은 이것을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라고 명명하였었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용의 자손(龍的傳人)’이라고 일컫는다. 적봉에서 ‘중화제일용’이 발견된 이후로 적봉은 ‘용의 고향(龍的故鄕)’으로 불리고 있다.

결국 오랜 역사를 통해서 중국과 중화민족을 상징하는 각종 상징들이 모두 요하 일대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곧, (1) 8000여 년 전의 흥륭와문화에서 발굴된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 (2) 7600여 년 전의 사해문화에서 발굴된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 (3) 7000여 년 전의 조보구문화에서 발굴된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 (3) 6000-5500여 년 전의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 모두 요하 일대에서 나온 것이다.

이 거대한 요하문명을 동이와 북적 그리고 예·맥족의 문명으로 볼 경우 중국은 대단히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논리가 바로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을 통해서 그 최종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요하문명론’인 것이다.

결국, 요하문명론의 핵심은 이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황제집단이고, 이후 동북 만주 일대에서 일어난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재편성하고, 이들이 일구어온 모든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것이라고 <세계를 놀라게 한 우하량 유적지 : 홍산문화는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

오늘날 통칭되는 ‘홍산문화’라는 것은 1955년 12월 출판된 윤달의 『중국신석기시대』에서 정식으로 명명된 것이다. 그는 이 책에 「적봉홍산후의 신석기시대 유적에 대하여(关于赤峰红山后的新石器时代遗址)」라는 장이 있는데, 이 글에서 홍산문화가 정식으로 명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 이후에 세계를 놀라게 한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다시 고고학계의 중심적인 논제로 떠올랐다.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지의 발견이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엄청난 유적지들이 계속해서 발견, 발굴되고 있다. 우하량 유적지의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것이고, 최근에도 계속 새로운 발견과 발굴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 우하량 유적지를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하려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중국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은, 거대한 규모의 제단(壇), 여신전(廟), 적석총(塚) 3위일체의 거대 유적을 갖춘 신석기문화로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필자도 이런 견해를 수용한다. 이것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1) 우하량 유적의 발견과 특징

1979년 5월 요녕성 조양시(朝阳市) 객나심좌익 몽고족자치현((喀喇沁左翼 蒙古族自治县: 현재는 喀喇顯) 동산취촌(东山嘴村) 뒷산 정상에서 대형 제단유적인 ‘동산취 유적’이 발견되었다. 1983년부터 1985년에 거처 동산취 유적에서 50Km 정도 떨어진 능원(凌源縣)과 건평(建平縣)의 경계 지역인 우하량촌(牛河梁村)에서 대대적인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1986년 7월 24일 신화사 통신은 우하량 유적에서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가는 대형제단(大型祭壇), 여신묘(女神廟), 적석총군(積石塚郡)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고고학자들은 여러 발굴 결과들을 토대로 우하량 유적이 이미 모든 국가 단계의 조건을 다 갖춘 문명사회였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중화문명의 예제(禮制)의 기원, 더 나아가 중화문명의 기원이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유적은 B.C. 35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시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유적지는 놀랍게도 이미 B.C. 3500년 당시에, (1) 계급이 분화되고, (2)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3)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진입한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유적이었다.

기존에 3황 5제의 신화시대를 운운하던 기원전 3500년에 이미 초기 국가 단계의 대규모 유적이 발견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는 황하 유역의 하(夏)나라에서 시작해서 상(商)나라와 주(周)나라로 이어지는 고대 국가 단계를 설정했었다. 우하량 유적지의 발견은 이런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우하량 유적지가 발견되기 전에 중국은 황하유역 앙소문화 지역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이자 중화문명의 고향이라고 보아왔었다. 1973년 장강 하류에서 앙소문화보다 이른 시기의 하모도문화가 발견되면서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하모도문화로 보고, 앙소문화와 하모도문화 지역을 중화문명의 2대 원류지도 보아왔었다. 우하량 유적이 발견되고 나서 중국은 앙소문화, 하모도문화, 홍산문화를 중국 문명의 3대 원류로 보고 있다. 이 세 곳 가운데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홍산문화로 보고 있으며, 요하 일대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하문명’으로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은 이보다 앞선, (1)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 유적’이 발굴된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6500- ), (2)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이 발굴된 흥륭와문화(兴隆洼文化: B.C. 6200- B.C. 5500), (3)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이 발굴된 ‘사해문화(查海文化: B.C. 5600- ), (4)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이 발굴된 조보구문화(赵宝沟文化: B.C. 5000- ) 등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켜온 것이다. 결국 우하량 유적은 ‘홍산문화의 꽃’ 이라고 할 수 있다.



2) 우하량 제2지점 제단(祭壇) 유적지

우하량 유적지가 발굴된 지역을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 먼저 유적 분포도를 보자. 아래 지도에서 철로와 도로로 연결된 오른쪽 위쪽으로 가면 건평현(建平顯)이고 왼쪽 아래로 내려가면 능원현(凌源顯)이다. 이 두 현의 경계 지역에 우하량 유적지가 분포한다.

먼저 아래 지도에는 제단 유적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고고공작참(考古工作站)에서 동남쪽에 있는 것이 우하량 제2지점으로 원형과 방형의 제단이 있는 유적지이다. 참조) 이 제단 유적도 모두 적석총의 형태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모두 적석총으로 표기를 했을 뿐이다. 이 제단 유적을 상세히 보면 아래와 같다.



<자료 12> 우하량 지역 유적 분포도



자료에서 보듯이 3원 구조로 된 거대한 원형(圓形) 제단과 방형(方形) 제단터가 발굴되었다. 발굴 조사 시에 그린 조사보고서의 그림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래의 사진 하단에 이 제단 유적지를 설명하고 있는 문구다. 중문과 영문으로 번역해 놓은 부분은 분명하게 “약 5500년 전에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들(all conditions to be a state)을 갖추고 있는 우하량 홍산문화 유적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우하량 제2지점의 제단, 신전, 적석총 등 각종 유적지를 통해서 홍산문화가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인 기원전 3500년경에 이미 국가 추형(雛形: 원형, 모델)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자료 13> 우햐량 제2지점 제단 유적지 전경

* 사진 아래 글씨는 약 5500년 전에 이미 국가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써있다.

. 5500年前具有國家雛形的原始社會遺址 - 牛河梁紅山文化遺址.

. 약 5500년 전에 이미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구비하고 있는 홍산문화 유적.



이 우하량 제2지점은 현재까지 일반인에게 유일하게 공개되는 곳이다. 직경이 20-30m에 이르는 거대한 제단과 적석총들이 현재도 인근에서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우하량 제2지점에서 발견된 원형과 방형의 제단유적을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원형이자 북경 천단 구조의 원형이라고 보고 있다. 우하량 제단 유적과 아래의 북경 천단구조를 비교해서 보면 이런 논의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세한 것은 필자의 여러 논문들을 참조할 것.



<자료 15> 우하량 제2지점 제4호총(第四号冢)



우하량 제2지점에서는 원형과 방형 제단 외에도 많은 옥기들도 발굴되었고 인골도 발굴되었다. 아래 <자료 17>의 사진에 보이는 인골의 가슴 위에 놓인 옥저룡(玉猪龍) 2개는 서로 모양이 다르다. 하지만 이 옥저룡들은 모두 1971년 옹우특기에서 발굴된 ‘중화제일용’의 다양한 변형이라고 보고 있다. 여러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형태의 옥저룡의 모습을 소개하면 아래 <자료 18>과 같다.

<자료 17>우하량 제2지점 제1호총(第一號冢) 4호묘(第四号墓) 출토 옥저룡(玉猪龙)과 인골



<자료 18> 홍산문화 지역에서 발굴된 다양한 옥저룡(玉猪龍)의 모습



홍산문화 지역에서 발견되는 옥기들은 대부분 적석묘의 중앙에 있는 석관묘에서 출토되는 것이다. 시신의 각 부위에는 많은 옥기들이 발굴되는데 그 발굴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이미 신분이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샤머니즘의 이차장 습속을 볼 수 있다.

<자료 19> 홍산문화 각 지역에서 발굴되는 옥기의 상태

19-1. 지배자의 석관묘



19-2. 이차장의 흔적





3) 우하량 제2지점 여신묘(女神廟) 유적지

여신묘 유적에서는 거대한 신전터가 발굴되었고, 여기에서는 실제 사람 크기의 흙으로 만든 여신이 발굴되었다. 여신묘 유적지는 우하량 제2지점의 북쪽 산 중턱에 있다. 여신의 두상에서 눈동자는 둥근 옥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여신묘 발굴 당시의 사진과 여신묘 유적지 그리고 여신의 두상 등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자료 20> 여신묘 발굴당시의 사진

* 중앙에 여신의 두상이 보인다.



<자료 21> 여신묘 유적지와 복원도



<자료 22> 여신의 두상, 반가부좌를 한 하체, 같이 발굴된 소형 도제(陶制) 여신상



4)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거대 적석총 유적지

현재도 홍산문화 각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대규모로 진행 중이며, 거대한 적석총들이 속속 발견· 발굴되고 있다.



2006년 6월에도 또 다른 거대 적석총군이 발견되었다. 아래는 이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자료들이다. 2006년 6월 10일 CCTV 보도에 의하면 내몽고 적봉시 오한기(敖汉旗) 사가자초모산(四家子草帽山) 유적지에서 5500년 전 적석총군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 홍산문화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로 가면 기원전 24~15세기의 적봉 일대의 하가점하층문화(下家店下層文化), 기원전 14~7세기의 하가점상층문화, 기원전 14세기~서주 무렵의 조양시(朝陽市)의 위영자(魏營子文化) 등이 등장한다. 특히 하가점하층문화와 하가점상층문화는 홍산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후속문화로, 이 지역에서 발원한 단군조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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