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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고조선의 위치
  글쓴이
   운영자
  날짜   2010-06-07[18:05]  count : 2002  IP :
고조선의 위치

란하와 갈석산 사이의 루룽현(永平府-盧龍縣)



“기자조선의 현장-조선성, 조선현, 고려보, 고려야 답사 확인”

“진황도시 온천보 북쪽 산중 고씨촌에 고려성과 고려우물, 망루확인”

“우하량 적석총유적에서 서울 석촌동 묘제와 석곽묘제, 신전 비교 확인”

“패수의 위치-란하를 비롯, 대릉하, 요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으로 이동 추정”

“장가구시 탁록현 삼조당과 치우채, 치우송, 치우정, 도굴된 치우릉 확인”



*답사단장/ 이형석, *답사단/ 박종호. 이명식, 김세환, 임창숙, 김영기, 이필남.

고조선-홍산문화유적답사단(2006. 10. 16-23. 단장 이형석)에 의해 고조선의 위치를 비롯, 고려성, 우하량의 적석총의 석곽묘제, 동산취의 신전유적 등을 답사, 이를 구체적, 실증적으로 확인하었다. 중국문헌에 ‘조선’이나 ‘고려’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혼용하고 있는 실정으로 본 답사단은 진황도를 출발하여 온천보 고씨마을의 고려성, 창여의 천고신악(千古神岳) 갈석산-창여박물관-란하-루룽현(盧龍縣)의 조선성, 조선현, 고려들 등을 답사하고 자료를 수집하거나 현장을 확인,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기자(箕子)조선은 주(周)왕조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고 하였으며 그 시기는 은(殷)말 주(周)초인 BC 1,100-BC 1,000년경의 인물로서 그의 족단은 란하(灤河)지역으로 부터 평양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이형구의 <단군과 고조선>(1999, 살림터 간)19쪽에 ‘연(燕)나라 진개(秦開)의 침략(BC311-BC279)으로 고조선은 요서(遼西)지방의 상당한 땅을 상실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서>(漢書)에는 ‘전한 무제의 업적을 말하면서,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으로 군(郡)을 삼았다’고 기록되었으며 ‘갈석산은 한나라의 낙랑군 수성현 그러나 연합통신(김태식기자)에서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고 기록한 것을 주목한 이병도는 ‘지금의 황해도 북부에 위치한 수안(遂安)이란 곳이 수성(遂城)과 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낙랑군 수성현 자리로 지목하자 대만의 학자가 만리장성을 황해도 수안까지 그려넣은 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어느 사서에도 황해도까지 만리장성이 이어졌다는 기록이 없으며 유적조차 없는 망설이라고 하였다.

에 있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이 산(碣石山)에서 일어났다’고 기록되었으며 순(舜)임금이 ‘갈석산’을 경계로 동쪽은 삼한의 땅이라 해서 경계로 삼았다’기록되었다. 또 <대명일통지>에는 ‘조선성이 영평부(永平府) 경내에 있으니 기자의 수봉지지(受封之地)로 상전(相傳)한다’고 기록된 것을 비롯, <성경일통지>에 ‘요서의 광녕현(廣寧縣)은 주대의 조선계이다’ <수서>(隋書)에 ‘고려(朝鮮)는 본래 고죽국이니 주(周)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지지에는 만리장성의 안쪽, 영평 땅에는 ‘조선성’, ‘조선현’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구당서> <요사> <문헌비고> <속문헌비고> <월정만필>(月丁漫筆) 등에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병자, 정축호란 때, 납치되어 온 조선인들의 집단마을인 고려보(高麗堡)가 진황도와 북경시 중간에 있는데 ‘고려야’(高麗野)란 들판이름으로만 남아있다. 김창업의 <연행록>을 보면 ‘조선 사람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짖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사기> 조선열전에 ‘왕험성은 요동의 옛 수도를 수리하고 패수(沛水)까지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왕험에 도읍하였다’고 하였으며 <수경주>(水經註)에는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서...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浿水出樂浪...東入于海)고 기록되었다. 그리고 <한서>(前漢)에 낙랑의 위치에 대하여 ‘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수성현)군을 삼았다’고 하였으므로 처음의 ‘패수’는 란하를 비롯 대릉하, 요하 등 중국의 요서, 하남(진평)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패수명칭(地名)은 점차 동쪽으로 이동, 압록강설, 청천강설, 대동강설로 이동, 정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증거로 당초에는 동쪽으로 흘러 바다(渤海)로 흘러 들어갔으나 강이름의 이동으로 우리나라의 서해(黃海)로 유입하는 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들 강 중 동쪽(정확히 남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강은 ‘대릉하’뿐이며 (중국쪽에서 보면) 패수를 건너 도읍하였으니 대릉하의 ‘조양’(朝陽-아사달)이며 패망할 때의 도읍지는 험독이 적지라고 판단된다.

성삼제는 <사라진 역사 고조선>에서 ‘대동강변에 있는 평양 외에 요동군에도 평양이 있었다’(고조선. 225면)고 기록한 것을 비롯, 도쿄제대본<삼국유사>에 ‘아사달(阿斯達)은 관성(關城-산해관 추정)의 동(東)쪽에 있다’(고조선 172면)는 기록과 김성남의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 ‘BC 109년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에서 한나라 육군은 고조선과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수군 역시 발해를 건너 왕험성(왕검성)을 공격하려했으나 오히려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참패했다.

이 당시 중국은 황하를 ‘하’(河), 양자강을 ‘강’(江)이라 부르고, 황해를 ‘해’(海)라고 불렀는데 수군은 산동반도에서 황해를 건넌 것이 아니라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로 둘러쌓인 발해(渤海)를 건너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왕검성은 그당시 평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해의 북쪽인 대능하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기 <사라진 역사 고조선>에서는 ‘이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오늘날 요동반도나 요하유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으며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의 해설 기록과 그 전쟁상황을 분석적으로 정리한 결과, 패수의 위치는 ‘대릉하’(大陵河)로 정립, 전투상황을 예상한 지도(105면)을 게재한바 있다. 답사자는 그 동안의 연구와 체험을 통해 ‘땅이름(地名)은 고정(固定)되어 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이동(移動)한다’는 사실을 확인, 패수와 평양의 위치도 민족의 이동을 따라 수 백년 간에 걸쳐 이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국유사>의 기록을 정리해 보면 ① 단군왕검은 국명은 조선, 도읍은 평양성, 시기는 요(堯) 즉위 50년(神市-熊族-天君-神政國家). ② 존속기간-1,500년간. ③ 핵심은 평양성-아사달(阿斯達)-장당경(藏唐京)-아사달이다.

한편 사마처의 <사기>나 <한사>지리지에 ‘고조선 위만의 도읍지’는 ‘험독’(險瀆-왕험성-왕검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삼국유사>는 후대의 기록이다.





명도전(明刀錢)의 발굴지역과 고조선의 강역 조사

‘명도전은 전국시대 때 연나라(BC 323-222년)에서 만들어진 화폐로서 손칼모양의 납작한 표면에 ‘명’(明)비슷한 문양이 양주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국 고대사속의 고조선사>(송호정저)에 기록되었으나 당시 연나라와 고조선은 전쟁 중인 적대적인 국가로 고조선에서 연나라 화폐가 널리 통용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성삼재 저<사라진 역사 고조선>(동아일보사 간, 2005) 137-158

이는 고조선 주민들이 자신들의 화폐를 만들지 않고 국경을 맞대고 전쟁 중인 상대국가의 화폐를 사용하였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나라는 불과 100여 년 동안 존속했던 나라이며 윤내현의 <고조선연구>에서는 ‘옛 요동을 중심으로 위만조선의 영역’을 표기, 연나라가 요동까지 통치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명도전은 홍산문화의 본거지인 적봉(赤峰)을 비롯, 고조선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조양(朝陽)에서도 다량으로 출토되었고 고조선의 영역과 명도전의 출토지역이 ‘마치 퍼즐그림을 맞추듯이 일치 했다’고 성삼제는 그가 지은 <사라진 역사 고조선>에서 밝히고 있다.

고조선의 영역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학자들은 ‘평안도를 중심으로 조그맣게 ’을 표기하였고 현재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서쪽으로 대릉하와 산해관부근’까지를 포함되게 표기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학자 부찐이 쓴 <고조선의 역사-고고학적 개요>에는 ‘BC 3세기 전까지는 난하(灤河)에 이르렀고 BC 3세기 이후 요하지역’까지 밀렸다고 본다고 하였으며 서울시립대 인문과학연구소 박선미 연구원이 쓴 논문(2000년)에는 ‘명도전이 출토되는 주요 유적 중 요하 동쪽의 유적은 연나라의 유적이 아니라 고조선의 유적이고 명도전은 고조선 고유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중국 길림대학 역사학과 고 장박천(張搏泉)교수는 <북방문물>에 실린 ‘명도폐연구속설’(明刀幣硏究續說)에서 ‘BC 7세기부터 BC 3세기 무렵까지 만주지역에는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 등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첨수도는 끝이 뾰쪽한 것이고 원절식은 화폐를 묶기 위해 구멍을 원(圓)으로 낸 것, 방절식은 구멍이 사각형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들 화폐 가운데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와 관련 화폐이고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이다’고하여 원절식인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임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북한에서는 일화전을 고조선의 고유한 화폐로 주장하고 있다. 본 답사단은 답사지역에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명도전(도폐)를 수집, 검토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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