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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우리나라 최초국가 고조선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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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2010-06-07[18:01]  count : 1802  IP :
우리나라 최초국가 고조선

농경의 발달로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부와 권력을 가진 족장(군장)이 출현하였다.

족장은 세력을 키워 주변지역을 아우르고 마침내 국가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성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다. 이후,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과 대결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 고조선은 (중국) 요령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족장사회를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바파형 동검과 고인돌의 출토 분포로써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세력범위는 청동기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의 하나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 나오는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고조선의 건국 사실을 전하는 단군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 국가의 형성/ 2007. 3/ 교육인적자원부 발간)



중국 요령지역을 중국 정부기관에서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집중 발굴조사한 결과, 이들 유적, 유물을 통해 ‘신비의 왕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 발표하였다. 따라서 이들 유적, 유물들과 우리나라(한반도)의 유적, 유물의 동질성이나 연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면 그 신비의 왕국은 고조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세계 역사학계로 부터 인증 받을 수 있다. 그 유물, 유적은 ①비파형 동검의 분포지역. ②고인돌의 석곽묘제와 적석총. ③토기-빗살무늬 토기와 미송리식 토기. 민무늬토기. ④청동화폐; 명도전(춘추전국시대 연나라/ 방절식도폐). 원절식 도폐(고조선지역). 첨수도(기자조선)의 분포지역. ⑤옥기(흥륭와형 옥귀고리). ⑥역사기록; 사마천의 사기, 한서지리지, 삼국유사, 동국통감 등. ⑦문화;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 윷놀이문화 등이다.





1. 비파형동검 (琵琶形銅劍)

청동기시대 무기의 하나로 검신의 형태가 비파와 비슷하며 중국 북동부의 요녕성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어 요녕식동검(銅劍)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부여 송국리(松菊里) 유적에서 완전한 유물이 수습된 것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함경도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지역에서 약 30여 자루가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형태는 검신의 아랫부분이 둥글게 나와 비파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에는 돌기부가 있고, 돌기부 양쪽으로 날이 약간씩 휘어 들어갔으며 슴베(莖部; 경부)가 그대로 연장되어 검신 중앙부에서 등대(背脊; 배척)를 이루며 인부(刃部)의 돌기부와 병행한 등대부분에는 약간 도드라진 마디가 있어 다른 동검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이루고 있다. 칼자루부분(劍把部; 검파부)은 ㅗ자형태로 내부가 비어 있어 검신과 결합하도록 조립식으로 되어 있다. 주로 돌널무덤·고인돌 등에서 출토되며, 돌널무덤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등지에 산재하여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중국 북동지방과 동일한 문화권이 형성된 가운데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짐작되며, 한국에서는 세형동검(細形銅劍) 전단계의 문화유물로 판단된다.

2. 고인돌 (支石墓, dolmen)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며, 거석문화에 속한다. 유럽의 고인돌은 BC 4000∼3000년대에 이미 유럽 전역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전국에 걸쳐서 분포해 있는데, 형식에 따라 북방식·남방식·개석식으로 나뉜다. 북방식 고인돌은 4개의 판석(板石)을 세워서 직사각형의 돌방(石室; 석실)을 구성하고 그 위에 거대하고 편평한 돌을 뚜껑돌(蓋石; 개석)로 올려 놓은 것으로, 유해가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뚜껑돌 크기는 대개의 경우 2∼4m 정도가 보통인데, 황해도 은율의 경우처럼 8.7m 이상에 전체 높이가 2m 이상인 경우도 있다.

고인돌에서 돌검과 화살촉이 주로 출토되는데, 충북 제천시 황석리(黃石里) 고인돌에서 발견된 돌검은 세형동검보다 연대가 앞선 것으로 알려져 고인돌은 금석병용기의 묘제가 아니라 청동기시대의 묘제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 외에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만 축조가 가능했으리라고 볼 때, 고인돌은 고대국가 발생 이전의 계급사회인,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족장사회의 공동묘지이며 세습신분사회까지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고인돌은 바위틈이나 인공적인 구멍에 나무쐐기를 박아서 물로 불려 큰 바위에서 떼어낸 돌이나 자연암석 그대로를 사용하여 지렛대와 밧줄·수로를 이용, 운반하고 뚜껑돌을 들어올릴 때는 받침돌을 세우고 그것과 같은 높이의 봉토를 쌓아 경사면을 만들어 끌어올린 후 봉토를 제거하는 방법을 써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신대(N34°53′02.8″/ E127°33′20.0″)에 남북방향, 사각형, 길이 862cm×580cm×10cm의 중국 개주고인돌보다 더 큰 한국(南韓)최대의 고인돌이 있다. 본 재단에서 확인된 고인돌 덮개돌의 길이 순위는 다음과 같다. *세계1위-북한 은율 관산리고인돌-8m75cm. *세계2위-여수 율촌면 산수리 왕바위재고인돌-8m62cm(본 재단 재계측/8m65cm). *세계3위-중국 요녕성 개주고인돌-8m60cm.

<적석총(積石塚); 돌무지무덤>

묘제의 하나. 목곽적석총(木槨積石塚)·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적석봉토분(積石封土墳) 등이라고도 한다. 지상 또는 지하에 피장자(被葬者)와 껴묻거리(副葬品; 부장품)를 안치한 목곽을 구덩식(竪穴式; 수혈식)으로 설치한 다음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냇돌로 덧널(槨; 곽)을 덮어 돌무지시설을 하고 다시 그 바깥에 점토 등의 흙을 입혀 다지는 방법을 사용한 묘제이다. 적석봉토분은 그 구조로 보아 전통적 널무덤(土壙墓; 토광묘)과 덧널무덤(木槨土壙墓; 목곽토광묘)이 고구려식 돌무지무덤(積石塚; 적석총)의 영향을 받아 적석목곽분으로 변모하고 다시 한강유역의 원형봉토분이 남하하여 지금의 고총고분이 경주지역에 등장한 것으로 짐작된다.

석곽묘(石槨墓)

중국 북동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돌로 덧널을 만든 무덤. 석곽묘(石槨墓)라고도 한다. 돌널무덤(石棺墓; 석관묘)과 돌방무덤(石室墓; 석실묘)과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고 혼용되기도 한다. 덧널(槨; 곽)이란 나무널(木棺; 목관) 등 유체를 넣는 널과 껴묻거리(副葬品; 부장품)를 넣는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므로 직접 유체를 안치하면 규모가 커도 돌널무덤이라고 해야 한다. 돌덧널무덤은 지면을 깊게 파고 석재로는 판석이 아닌 자연괴석이나 자갈돌을 사용하며, 묘실은 목관을 전제로 한 구조와 같은 정도로 깊게 만든다. 그 좋은 예로 중국 북동 지방 남산근(南山根)· 호두구(胡頭溝) 돌덧널무덤에서 볼 수 있고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돌덧널무덤의 전형은 중국 요녕성에서 발견된 서주∼춘추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길이 약 4m인 직사각형의 구덩이(竪穴; 수혈)를 파고 주위의 벽은 자갈을 쌓아 올렸으며 이 덧널 안에 나무널과 껴묻거리인 청동기 등을 넣었다. 한국의 돌덧널무덤은 대전광역시 괴정동, 충청남도 아산시 남성리, 부여군 연화리 등에서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고인돌 무덤방은 석곽묘이다.

<고조선 초기의 무덤; 강상(崗上墓)무덤, 누상(樓上墓)무덤>

BC 8∼BC 7세기 고조선 초기의 무덤으로 두 무덤이 같은 유적지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요동반도 남쪽 끝에 위치하며 지금의 요녕성 여대시(旅大市) 감정자구 후목성역 강상언덕에 있다. 1964년에 발굴된 강상무덤은 남북길이 20m, 동서길이 28m의 넓은 묘역(墓域)을 차지하는데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 위에 널방(墓室; 묘실)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모두 23개의 널방이 있는데 각 널방에는 수십명분의 뼈가 발굴되어 당시 무덤주인의 하인들이 함께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6자루의 비파형단검을 비롯해 창끝· 활촉· 비녀· 질그릇 등 총20여종 874점의 유물이 발굴됨으로써 당시의 청동기문화가 매우 발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상무덤 묘역 한가운데는 잘 다듬은 판석을 깐 2개의 돌덧널무덤이 있고, 둘레에는 보통의 돌덧널무덤이 8개 있다. 가운데 2개의 돌덧널무덤에는 비파형 단검·방패·도끼·끌, 수레의 부속품들 등 90여 점의 청동기와 여러 가지 청동장식품들이 부장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약 50여 명 분의 사람뼈가 발굴되었다. 따라서 이 무덤은 중앙 2개의 무덤이 주인공이고 주변의 무덤들은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이 무덤은 BC 7∼BC 5세기경 고조선의 지방귀족의 무덤으로 보인다. 이 무덤과 강상무덤은 고조선 사회가 노예제 사회였다는 주장의 한 근거가 된다.

3.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북방 유라시아의 신석기시대를 특징짓는 토기. 즐문토기(櫛文土器)라고도 한다.

바닥면이 포탄모양으로 뾰족한 뾰족바닥형(尖底形; 첨저형)과 편평한 화분모양의 납작바닥형(平底形; 평저형)의 두 종류가 있으며, 무늬새기개(施文具; 시문구)로 새긴 각종 무늬가 있다. 한국의 빗살무늬토기도 신석기시대의 토기이며, 둥근바닥· 납작바닥의 2가지가 기본형인데 각종 기하학무늬가 새겨져 있다. 유적은 해안이나 강변 가까이에 분포하며, 조개더미를 형성하는 일이 많다. 수렵· 어로를 주로 했으나, 후반에는 철자형(凸字形) 돌도끼· 돌낫· 돌괭이 및 멧돼지 엄니로 만든 낫 등이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잡곡재배도 한 것 같다. BC 7∼8세기 무렵에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무문토기)로 바뀌었다.

4. 청동화폐-명도전(明刀錢)

명도전은 고조선시대인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사용되던 화폐이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만주 지역에는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즉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가 그것이다. 이들 화폐 가운데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 관련 족의 화폐이고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다."(길림대학 역사학과 교수 고 장보촨 교수의 흑룡강성 발행, 고고학계 학술지 <북방문물> 2004년 제4기 논문집 ‘명도폐연구속설’). 곧 칼 모양의 청동화폐인 원절식도폐(明刀錢)은 고조선 화폐라는 것이다. 명도전이라는 이름은 일본인이 붙인 이름이며, 연나라화폐라고 규정한 것은 중국학자라고 한다. 이는 중국측이 연나라의 지역이었다고 보는 요서지역에서도 많은 명도전이 발굴된다는 이유에서 였다. 당시 연과 고조선은 서로 침공하고 침공당하는 적대적인 국가였으므로 고조선이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연나라의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5. 옥기; 결상이식 옥귀고리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이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리 1313번지 일대 890평을 발굴조사한 결과 5천년 전 신석기시대 무덤에서 구덩이 하나에 시신 2구를 하늘을 바라보게 나란히 안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한 최대의 여수 왕바위재 고인돌>

이 패총에서 인골이 손에 찬 조개팔찌를 비롯해 결상이식(耳飾) 귀고리 등의 장식유물도 거두었는데 항공대 우실하교수는 ‘고조선의 강역과 요하문명’지도(2007. 8)에서 안도패총에 대해 ‘흥륭와문화유적과 관련된 옥 귀고리(기원전 4,000년-기원전 3,000년)’라 표기하였다.

결상이식은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선사유적지(사적 426호)에서 ‘국내 최초의 신석기시대 옥 귀고리’가 발견되어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암리 유적은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유적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유적(기원전 6000~기원전 3000년)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므로 홍산문화와 시기가 엇물리고 있었지만 한반도 남부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형태의 결상의식이 한반도 서남부 여수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다.

6. 역사기록-고조선의 도읍지 험독(險瀆)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正史)는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로 1142-1145년 작품이다. 그러나 중국의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히는 사마천의 <사기>나 반고의 <한서>는 기원전 100년을 전후하여 편찬된 역사서로 무려 1천200년 전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고조선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편찬된 기록으로 이 자료를 편집하고 각주를 붙이고 이를 다시 우리식의 역사서로 재편집한 <삼국사기>의 기록의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한서>(漢書)지리지에 ‘조선왕 위만의 도읍이며, 물이 험한 곳에 위치해 험독(險瀆)이라 한다.’ 이어서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으니 이를 바로 험독이라 한다.’ ‘패수는 지금의 하북성에 있는 ‘조백신하’(潮白新河)를 가르킨다.’

▶〈사기>(史記) ‘요동 험독현(險瀆縣)에 조선왕의 옛 도읍이 있다. 여기서의 요동은 당시 요수인 난하의 동쪽이다.’ 색은편에 ‘창려에 험독현이 있다.’





<한서>지리지의 원문

‣험독; 응소왈 조선왕 만의 도읍지이다. 물이 험한 곳에 위치해 험독(險瀆)이라 한다. 신찬은 왕험성은 낭랑군 패수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험독에 대해 ‘서광(徐廣)은 <사기집해>에 창여(昌黎)에 험독현이 있다’고 하였다. / 徐廣曰..昌黎有險督縣 應注地里志遼東險督縣朝鮮王舊都/ <史記集解> 단군조선의 서부변경인, 지금의 중국 북경 가까이에 있는 난하 동부유역에는 일찍이 서기전 12세기경에 기자 일족이 서주(西周)로부터 망명하여 자리를 잡고 기자조선(箕子朝鮮)이라는 단군조선의 거수국(諸侯國)이 되어 있었다. 위 창려의 험독 위치에 대하여 <한서보주>(漢書補註)에는 ‘今營州古城東南一百七十里’라고 적혀 있고, <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에는 ‘今錦州府義州西北境’이라고 적혀 있다. 이를 보면 위만조선의 초기수도는 의(義: 대릉하방면) 서북경에 있었다고 풀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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