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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우리 나라 최초 국가 고조선
  글쓴이
   운영자
  날짜   2010-06-07[18:10]  count : 1872  IP :
우리 나라 최초 국가 고조선: 농경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부와 권력을 가진 족장(군장)이 출현하였고 족장은 세력을 키워 주변 지역을 아우르고 마침내 국가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성립된 우리 나라 최초의 국가가 고조선이다. 이후, 고조선은 철기 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과 대결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ꡐ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은 당시 지배자의 칭호였다. 고조선은 요령(중국)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족장 사회를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비파형 동검과 석곽묘제, 적석총, 고인돌, 빗살무늬 토기, 청동 화폐인 명도전, 옥기 등의 출토 분포로써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는 청동기 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의 하나인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이 나오는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를 중국 고대 역사서인 『사기』, 『수경』, 『한서』‘지리지’ 등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의 기원에 대하여 (1)대동강 기원설 (2)요동․요서 기원설 (3)이동설(요서․요동․대동강) 등이 있다. 후학들의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지도에서는 여러 학설을 소개 하였다. (우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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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 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까지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을 역사상 가장 이른 ‘세계 4대 문명’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요서지방 요하 일대에서 이들 4대 문명에 손색이 없고 더 이른 시기의 새로운 문명권이 발굴되고 있다.

요하문명은 기원전 3500년 경에 이미 ‘초기 국가 단계’에 들어서는 ‘제 5의 문명’으로 자리 메김하고 있다. 요하지역 신석기 문화는 황하문명보다도 200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까지 ‘야만인인 동이족의 땅’으로 보아왔던 이 요하문명을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보기 시작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기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화 민족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단군, 웅녀, 해모수, 주몽도 결국 올라가면 모두가 중화 민족의 선조라는 황제, 전욱, 제곡의 후손이라는 것이 중국의 새로운 시각이다.

그러나 요하문명은 중원의 황화문명과는 이질적이며, 요하 일대에서는 중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와 적석총,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 등이 대량으로 발견된다. 곧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은 예맥의 선조로 이들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선조들인 것이다. 상세한 것은 아래의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우실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서울: 소나무, 2007).



<요하일대의 주요 신석기-청동기문화 소개>

(1)신석기 소하서 문화(小河西文化: B.C. 7000- B.C. 6500)

: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문화’ 유적

(2) 신석기 흥륭와 문화(隆륭와文化: B.C. 6200- B.C. 5200)

: 해자로 싸인 동북아 최초의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

: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 발견 (수암옥: 요서와 요동의 교류 확인)

(3) 신석기 사해 문화(査海文化: B.C. 5600- )

: 돌을 쌓아 만든 최초의 용(龍) 형상물인 ‘중화제일용(中華第一龍)’

(4) 신석기 부하 문화(富河文化: B.C. 5200- B.C. 5000)

: 가장 오래된 복골(卜骨) 발견

(5) 신석기 조보구 문화(조보구文化: B.C. 5000- B.C. 4400)

: 최초의 봉(鳳) 형상물인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 발견

(6) 동석병용 시대 홍산 문화(紅山文化: B.C. 4500- B.C. 3000)

: 초기 (B.C. 4500- B.C. 3500)

: 만기 (B.C. 3500- B.C. 3000): 초기 문명/ 국가 단계 진입

(7) 동석병용 시대 소하연 문화(小河沿文化: B.C. 3000- B.C. 2000)

(8) 초기 청동기 시대 하가점 하층 문화(夏家店下層文化: B.C. 2000- B.C. 1500)

: 고급 문명 사회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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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확인하고 찾은 고조선 이형석(교육학박사.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고조선은 B.C. 108년 한사군(漢四郡)설치까지에 주로 한반도 서북해안 지역에 있었던 부족 국가로, 이른바 단군 조선(檀君朝鮮. B.C. 2333년 건국), 기자 조선(箕子朝鮮. B.C. 112년 건국), 위만 조선의(衛滿朝鮮. B.C. 194년 건국)의 총칭으로 그 중심은 ‘대동강 유역설’과 ‘요하 유역설’이 있다. 그리고 이 글의 말미에 ‘한강 유역설’을 제기하고자 한다.

『사기』와 『한서』‘지리지’에 ꡒ험독(왕험성)은 (고)조선의 도읍지ꡓ라 하였는데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후대인들은 여러 곳을 비정했다. 즉ꡐ험독ꡑ의 한반도설(平壤城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삼국사기』), 중국 요녕설(패수, 창여) 등이 그것이다.

『중국역사지도집』에는ꡐ험독ꡑ의 위치가 표기되었는데,ꡐ의무려산 남쪽, 심양의 남서쪽 요하변ꡑ에 위치하고 있다. 현 위치는 대안현(臺安縣) 신개하향(新開河鄕)에 있는 손성자성(孫城子城)이다.

『한서』‘지리지’에 험독은ꡒ조선 왕 만(滿)의 도읍지다. 험한 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험독이라고 했다ꡓ고 기록되었으며 이 지역은 현재ꡐ고려성(高麗城)ꡑ이라고 부른다.

이로써ꡐ험독ꡑ을 비롯한ꡐ아사달, 장당경, 백악산, 평양(襄平)ꡑ등 고조선의 여러 도읍지 중 ꡐ평양ꡑ과 ꡐ험독ꡑ 2곳은 밝혀진 셈이다.

신채호 선생과 북한의 학계에 따르면 해성(海城)부근의 고평양(古平壤)이나 개주(盖州)를 고조선의 도읍지로 지목했는데, 이 부근에 손성자성과 양평(襄平), 환동(桓洞), 안시(安市) 등이 있다. 그리고 개주에는 중국 최대의 제단형(卓子式)고인돌이 있고ꡐ별자리 성혈ꡑ이 있으며, 요동반도 끝의 대련에는 고조선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강상무덤, 누상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발굴 성과와 문헌 자료를 통해서 보면, 사해․흥륭와 문화를 토대로 홍산-우하량 유적에서 꽃 핀 요하 문명에서 최초의ꡐ신비의 국가ꡑ가 탄생하였다. 하가점 상층․하층문화를 거처 완전한 국가 단계에 진입하고 동 남쪽으로 이동하여 조양-험독으로 도읍지를 옮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조선의 위치-난하와 갈석산 사이의 노룡현(盧龍縣: 옛 永平府)

기자(箕子)조선에 대해서, 주(周)왕조 무왕이ꡒ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ꡓ고 하였으며, 기자는 은(殷)말 주(周)초인 B.C. 1,100-BC 1,000년경의 인물로 기자 집단은 난하 지역으로 들어와 평양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 인용된『위략』에 의하면ꡒ연나라 장군 진개(秦開)를 파견해 조선의 서쪽 지역을 침공해 2,000리의 땅을 빼앗아 만번한을 경계로 삼았다.ꡓ는 구절이 있다. 곧, 진개의 침략(B.C. 311-B.C. 279)으로 고조선은 요서(遼西)지방의 상당한 땅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그리고『한서(漢書)』에는, (1) 전한 무제의 업적을 말하면서, ꡒ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으로 군(郡)을 삼았다ꡓ는 기록이 있으며, (2)ꡒ갈석산은 한나라의 낙랑군 수성현에 있다. 진나라가 쌓은 장성이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이 산(碣石山)에서 일어났다ꡓ,ꡒ순(舜)임금이 ꡐ갈석산ꡑ을 경계로 동쪽은 삼한의 땅이라 해서 경계로 삼았다ꡓ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대명일통지』에는 ꡒ조선성이 영평부(永平府) 경내에 있으니 기자의 수봉지지(受封之地)로 상전(相傳)한다ꡓ는 기록이 있고 『성경일통지』에는ꡒ요서의 광녕현(廣寧縣)은 주대(周代)의 조선계(朝鮮界)이다ꡓ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수서(隋書)』에는ꡒ고려(朝鮮)는 본래 고죽국이니 주(周)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ꡓ고 하였으며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지지(地誌)’에는 만리장성의 안쪽, 영평 땅에 ꡐ조선성ꡑ,ꡐ조선현ꡑ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또 『구당서』『요사』『문헌비고』『속문헌비고』『월정만필(月丁漫筆)』등에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병자호란과 정축호란 때 납치되어 온 조선인의 집단 마을인 고려보(高麗堡)가 진황도와 북경시 중간에 있었는데, 현재는ꡐ고려야ꡑ(高麗野)란 들판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김창업의『연행록』을 보면ꡒ조선 사람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보았다ꡓ고 기록하였다.

한편, 『사기』‘조선열전’에ꡒ왕험성은 요동의 옛 수도를 수리하고 패수(沛水)까지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위만이 패수를 건너 왕험에 도읍하였다ꡓ고 하였으며, 『수경주(水經註)』에는ꡒ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흘러와서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浿水出樂浪...東入于海)ꡓ고 하였다. 그리고 『한서』에는 낙랑과 관련하여 ꡒ동쪽으로 갈석산을 지나 현도와 낙랑(수성현)군을 삼았다ꡓ고 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처음의ꡐ패수ꡑ는 난하, 대릉하, 요하 등 중국의 요서지역과 하남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 요서지역에 있던ꡐ패수ꡑ라는 명칭은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여, 패수-압록강설, 청천강설, 대동강설 등이 나온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곧, 처음에는 ꡐ동쪽으로 흘러 바다(渤海)로ꡑ흘러 들어갔으나, 강 이름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우리 나라의 서해(黃海)로 유입하는 강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ꡐ강ꡑ가운데ꡐ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강ꡑ은ꡐ대릉하ꡑ뿐이다. 곧, 중국 쪽에서 패수를 건너 고조선이 도읍하였다고 하였으니, 이곳은 대릉하의ꡐ조양ꡑ(朝陽-아사달 추정)일 가능성이 많으며, 고조선이 패망할 당시의 도읍지는ꡐ험독ꡑ이 적지라고 판단된다.

이런 논의와 관련, 성삼제는『사라진 역사 고조선』에서ꡒ대동강변에 있는 평양 외에 요동군에도 평양이 있었다. 하였고, 도쿄제대본 『삼국유사』에 ꡒ아사달(阿斯達)은 관성(關城-산해관 추정)의 동(東)쪽에 있다. 는 기록, 김성남의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 ꡒB.C. 109년 고조선과 한나라 전쟁에서 한나라 육군은 고조선과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수군 역시 발해를 건너 왕험성(왕검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오히려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참패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당시 중국은 황하를ꡐ하ꡑ(河), 양자강을ꡐ강ꡑ(江)이라 부르고, 황해를ꡐ해ꡑ(海)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한나라 수군은 산동반도에서ꡐ황해ꡑ를 건넌 것이 아니라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로 둘러싸인ꡐ발해(渤海)ꡑ를 건넌 것이다.

이렇게 볼 때ꡐ왕검성ꡑ은 ꡐ현재의 한반도 평양ꡑ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해의 북쪽인ꡐ대능하, 요하 부근ꡑ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성삼제의『사라진 역사 고조선』에서는ꡒ이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오늘날 요동반도나 요하유역일 가능성이 크다ꡓ고 하였다. 그는 사마천의『사기』‘조선열전’의 기록과 그 전쟁 상황을 분석․정리하여, 패수의 위치를ꡐ대릉하ꡑ(大陵河)로 추정하여 전투 상황을 예상한 지도를 게재한 바 있다. 지명(地名)은 여건에 따라 이동(移動)할 수 있다. 그러나 위만조선이 망할 때까지 ‘패수와 왕험성(왕검성-험독)’은 한반도(평양)에 위치하지 않았고 중국(요서)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위의 기록과 자료들로 확인할 수 있다.

*한강 유역설; 한강권에서 고인돌의 분포를 살펴보면 132곳 611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고 우장문 박사는 적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고인돌이 산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강권에서 수많은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한강권에 상당히 큰 범위의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놀라운 것은 인천 서구 검단 대곡동에서 토성으로 된 산성 위에서 대형 고인돌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현재 인천시로 편입된 대곡동 고인돌은 가현산에서 뻗어 내린 낮은 구릉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도로 설치 때문에 절개된 토성의 단면을 보면 인공적으로 토성을 쌓은 흔적을 지금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되는 대형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해 있는데 이들 북방식 고인돌은 인근 강화도와 연계된다. 대곡동 고인돌은 토성이 건설된 후 즉 토성이 폐성이 된 후에 비로소 고인돌이 축적되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특히 이들 토성은 평지성이 아니라 산성인데 산성이 폐성된 연후에 건설된 것을 감안하여 일반적으로 고인돌보다 500년 정도 앞서 건설되었다고 추정한다. 산성은 하나의 방어 체계를 이루고 일정한 지역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인정하므로 이들 지역에 커다란 정치 세력 즉 국가 체계와 같은 조직적인 사회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양수리 두물 머리 고인돌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측정한 결과 3,900±200B.P(MASCA 계산법으로는 4,140~4,240B.P)라는 절대 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검단산 서쪽 바닷가 대포(大浦)지역에 옛날 궁터가 있었다는 고궁(古宮)골과 왕길리가 위치한 사실 등을 볼 때 이 지역에 고대 국가가 존재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교동면 삼선리 일원에 있는 별자리와 바위 그림은 매우 독특하여 항로의 안정을 기원하던 고대인들의 제단 또는 신앙 유구로 보았다. 한강 유역에서 상당수의 청동기 시대 유물이 발견된다는 것도 국가 체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준다. 서울시 가락동․명일동․역삼동을 비롯하여 구리시 수석리․남양주시 금남리․하남시 미사리․양평군 양수리․상자포리․여주군 흔암리 등 한강의 본류와 지류를 가릴 것 없이 전 지역에 밀집 분포한다.

더욱 국가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은 정착 생활을 의미하는 여러 종류의 곡물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고양시 주엽동 새말에 출토된 볍씨들은 약 4500~5000 년 전의 재배 볍씨로 밝혀졌고, 김포군 한강 하류 이탄층에서 발견된 볍씨는 약 4천 년 전, 여주 흔암리에서 3000-2500년 전 볍씨가 발견되었다. 특히 흔암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선사 시대 취락지로서 이곳에서 탄화된 벼․보리․가정․수수가 발견되었는데 벼가 출토된 움집터에서 발견된 숯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각각 기원전 1165년, 855년, 270년이다.

강화도 마리산(마니산)에는 단군의 세 아들들이 세웠다고 전해오는 삼랑성이 있다. 그 성 안에는 고대의 천문 관측대인 참성단(塹星壇, 塹城壇)이 있었고 이곳에서 별을 살펴보고, 제사도 지냈다는 것이다. 국가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물증들이 남아 있는 한강 유역 중에서도 산성이 건설된 대곡동 인근의 강화도에 참성단이라는 고도의 천문 관측기구가 있다는 것은 그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고조선 등의 존재가 결코 전설이 아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단군(고조선)의 역사적 기록과 유적이 남아 있는 지역은 대동강과 한강 유역인데 두 곳의 공통점으로 산성 위에 고인돌이 있다는 점과 고인돌 별자리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상호 바다나 하천은 물론 육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갖고 있음도 주목거리다. 그러나 여기에서 논자는 그동안 발견된 많은 유물 등을 근거로 한강 유역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제시할 수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 고대 국가 성립의 조건; ①왕궁 건물의 존재. ②도시의 존재. ③성곽의 존재. ④대형 무덤의 존재. ⑤청동제 또는 철제 무기의 존재

북한측이 단군 시대인 기원전 3000년 경에 국가가 세워졌다고 추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평양시 강동군 남강 로동자구에서 발견된 황대성(黃岱城) 위의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 무덤은 황대성의 중요성 때문에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고 유사 고인돌 무덤인 구빈리 고인돌 무덤의 절대 연도는 4990±444년 전이고, 룡곡리 4호는 4539±167년이다. 축조 연대가 기원전 3천 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황대성이야말로 단군 조선이 존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산성은 평지의 성이나 목책과는 다른 군사 시설이다. 군사 시설이란 고래로부터 통치자의 지휘처로 사용되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단군 조선 시대와 유사한 시대에 축조된 산성의 존재는 곧 고대 국가가 존재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우하량 홍산 문명에 ‘신비의 왕국’이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만으로도 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는 논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다량의 옥기가 출토되는 것은 옥만 제조하는 전문 직업인이 존재하고 사당과 제단이 있다는 것은 이들을 운영하는 특수층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한 변이 140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는 이를 건축토록 지시할 수 있는 지배자가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한 마디로 이들 사회는 계급 사회로 5~6천 년 전에도 국가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호, 이형석 ‘한강권의 고조선유적연구’ 2007.제 40회 땅이름학술발표회 논문>



고조선의 영역; (1)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 학자들은ꡐ평안도를 중심으로 조그맣게ꡑ표기하였었고, (2)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ꡐ서쪽으로 대릉하와 산해관 부근ꡑ까지를 포함되게 표기하였으며, (3) 러시아의 학자 부찐이 쓴 『고조선의 역사-고고학적 개요』에는 ꡐB.C. 3세기 전까지는 난하(灤河)에 이르렀고, B.C. 3세기 이후 요하지역까지 밀렸다ꡑ고 보고 있으며, (4) 서울 시립대 인문과학연구소 박선미 연구원이 쓴 논문(2000년)에는 ꡒ명도전이 출토되는 주요 유적 중 요하 동쪽의 유적은 연나라의 유적이 아니라 고조선의 유적이고 명도전은 고조선 고유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ꡓ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5) 중국 길림대학 역사학과 고 장박천(張搏泉)교수는 『북방문물』에 실린 「명도폐연구속설(明刀幣硏究續說)」에서 ꡒB.C. 7세기부터 B.C. 3세기 무렵까지 만주 지역에는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 등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첨수도는 끝이 뾰쪽한 것이고 원절식은 화폐를 묶기 위해 구멍을 원(圓)으로 낸 것, 방절식은 구멍이 사각형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들 화폐 가운데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와 관련 화폐이고,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이다ꡓ고 하였다. 한편 북한에서는 일화전을 고조선의 고유한 화폐로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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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청동기시대 무기의 하나로 검신의 형태가 비파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북동부의 요녕성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어 요녕식 동검(銅劍)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부여 송국리(松菊里) 유적에서 완전한 유물이 수습된 것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함경도 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에서 약 30여 자루가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세형 동검(細形銅劍) 전 단계의 문화 유물로 판단된다.


고인돌(支石墓, dolmen): 선사시대 돌무덤의 하나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하며, 거석 문화에 속한다. 유럽의 고인돌은 B.C. 4000~3000년대에 이미 유럽 전역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전국에 걸쳐서 분포해 있는데, 형식에 따라 북방식․남방식․개석 식으로 나뉘기도 한다. 북방식 고인돌은 4개의 판석(板石)을 세워서 직사각형의 돌방(石室; 석실)을 구성하고 그 위에 거대하고 편평한 돌을 뚜껑돌(蓋石; 개석)로 올려놓은 것으로, 유해가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뚜껑돌 크기는 대개의 경우 2~4m 정도가 보통인데, 황해도 은율의 경우처럼 8.75m 이상에 전체 높이가 2m 이상인 경우도 있다.

고인돌에서 돌검과 화살촉이 주로 출토되는데, 충북 제천시 황석리(黃石里) 고인돌에서 발견된 돌검은 세형 동검보다 연대가 앞선 것으로 알려져 고인돌은 금석병용기의 묘제가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묘제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 외에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만 축조가 가능했으리라고 볼 때, 고인돌은 고대 국가 발생 이전의 계급 사회인,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족장 사회의 공동 묘지이며 세습 신분 사회까지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고인돌은 바위틈이나 인공적인 구멍에 나무 쐐기를 박아서 물로 불려 큰 바위에서 떼어낸 돌이나 자연 암석 그대로를 사용하여 지렛대와 밧줄․수로를 이용, 운반하고 뚜껑돌을 들어올릴 때는 받침돌을 세우고 그것과 같은 높이의 봉토를 쌓아 경사면을 만들어 끌어 올린 후 봉토를 제거하는 방법을 써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적석총(積石塚) 돌무지 무덤: 지상 또는 지하에 피장자(被葬者)와 껴묻거리(副葬品)를 안치한 구덩식(竪穴式)으로 설치한 다음 사람의 머리만한 크기의 냇돌로 덧널(槨; 곽)을 덮어 돌무지 시설을 하고 다시 그 바깥에 점토 등의 흙을 입혀 다지는 방법을 사용한 묘제이다.

적석봉 토분은 그 구조로 보아 전통적 널 무덤(土壙墓)과 덧널 무덤(木槨土壙墓)이 고구려식 돌무지 무덤(積石塚)의 영향을 받아 적석 목곽분으로 변모하고 다시 한강 유역의 원형 봉토분이 남하하여 지금의 고총 고분이 경주 지역에 등장한 것으로 짐작된다.



석곽묘(石槨墓): 중국 북동부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돌로 덧널을 만든 무덤. 석곽묘(石槨墓)라고도 한다. 돌널 무덤(石棺墓)과 돌방 무덤(石室墓)과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고 혼용되기도 한다. 덧널(槨; 곽)이란 나무널(木棺) 등 유체를 넣는 널과 껴묻거리(副葬品)를 넣는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므로 직접 유체를 안치하면 규모가 커도 돌널 무덤이라고 해야 한다. 돌덧널 무덤은 지면을 깊게 파고 석재로는 판석이 아닌 자연 괴석이나 자갈돌을 사용하며 묘실은 목관을 전제로 한 구조와 같은 정도로 깊게 만든다. 그 좋은 예로 중국 북동 지방 남산근(南山根)․호두구(胡頭溝) 돌 덧널 무덤에서 볼 수 있고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돌 덧널 무덤의 전형은 중국 요녕성에서 발견된 서주~춘추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조선 초기의 무덤 강상(崗上墓)무덤, 누상(樓上墓)무덤: B.C. 8~B.C. 7세기 고조선 초기의 무덤으로 두 무덤이 같은 유적지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요동반도 남쪽 끝에 위치하며 지금의 요녕성 여대시(旅大市) 감정자구 후목성역 강상 언덕에 있다. 1964년에 발굴된 강상무덤은 남 북 길이 20m, 동 서 길이 28m의 넓은 묘역(墓域)을 차지하는데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 위에 널방(墓室)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모두 23개의 널방이 있는데 각 널방에는 수십 명 분의 뼈가 발굴되어 당시 무덤 주인의 하인들이 함께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무덤은 중앙 2개의 무덤이 주인공이고 주변의 무덤들은 순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B.C. 7~B.C. 5세기 경 고조선의 지방 귀족의 무덤으로 보인다.



빗살 무늬 토기(櫛文土器): 북방 유라시아의 신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토기. 즐문 토기(櫛文土器)라고도 한다. 바닥 면이 포탄 모양으로 뾰족한 뾰족 바닥형(尖底形)과 편평한 화분 모양의 납작 바닥형 평저형(平底形)의 두 종류가 있으며, 무늬 새기개 시문구(施文具)로 새긴 각종 무늬가 있다. 한국의 빗살 무늬 토기도 신석기 시대의 토기이며, 둥근 바닥․ 납작 바닥의 2가지가 기본형인데 각종 기하학 무늬가 새겨져있다. B.C. 7~8세기 무렵에는 민 무늬 토기(無文土器)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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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도읍지: 『삼국유사』에, ① 국명은 조선, 도읍은 평양성, 시기는 요(堯) 즉위 50년(神市-熊族-天君-神政國家). ② 존속기간-1,500년 간. ③ 아사달(阿斯達)-평양성(平襄城)-장당경(藏唐京)-아사달(阿斯達)이다.

※일부 학자 들은 6→5→3→4→1→6 으로 이동설을 주장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1→2→4→5→6 으로 이동 하였다고도 한다.

한편 사마천의 『사기』나 『한서』‘지리지’에ꡐ고조선(위만)의 도읍지ꡑ는 중국 요서지역의 ꡐ험독ꡑ(險瀆=왕험성=왕검성)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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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浿水); 고조선 때 중국과 경계를 이루던 강. 사마천의『사기』(史記) ‘조선열전’에, 한(漢)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뒤 요동(遼東)지방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요동과 고조선과의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위만 조선 말기에 한나라의 사신 섭하(涉河)가 우거왕(右渠王)을 만난 뒤 귀국길에 자신을 호송하던 고조선 관리를 살해하고 달아난 장소가 다름 아닌ꡐ패수ꡑ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강 이름이다. 중국(漢)과 고조선의 경계 하천인 패수를 청천강(淸川江), 예성강, 대동강 등 한반도설과 중국의 난하, 대릉하, 요하설이 있다. 중국 고서에 따르면 난하설이, 중국 지도에는 요하설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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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독(險瀆); 응소왈 조선왕 만의 도읍지이다. 물이 험한 곳에 위치해 험독(險瀆)이라 한다. 신찬은 왕험성은 낭랑군 패수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험독에 대해ꡐ서광(徐廣)은『사기집해』(史記集解)에 창여(昌黎)에 험독현이 있다ꡑ고 하였다. (徐廣曰..昌黎有險督縣 應注地里志遼東險督縣朝鮮王舊都). 단군 조선의 서부 변경인, 지금의 중국 북경 가까이에 있는 난하 동부 유역에는 일찍이 서기전 12세기 경에 기자 일족이 서주(西周)로부터 망명하여 자리를 잡고 기자 조선(箕子朝鮮)이라는 단군 조선의 거수국(諸侯國)이 되어 있었다.

위 창려의 험독 위치에 대하여『한서보주』(漢書補註)에는ꡐ今營州古城東南一百七十里ꡑ라고 적혀 있고『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에는ꡐ今錦州府義州西北境ꡑ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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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사기(史記)』, 『한서(漢書)』, 『수경(水經)』, 『수경주(水經註)』, 『산해경(山海經)』, 『한서보주(漢書補註)』, 『사기집해(史記集解)』, 『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 『당서(唐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월정만필(月丁漫筆), 『위서(魏書), 『진태강지리지(晉太康地理志)』, 『19사략통고(十九史略通考)』, 『대명일통지(大明一統誌)』,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금사(金史)』,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구당서(舊唐書)』, 『요사(遼史)』 『문헌비고』, 『속문헌비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사기색은(史記索隱)』, 『중국역사지도집』, 『연행록』,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해동역사(海東歷史)』, 이병도『신수 한국사대관』, 윤내현『고조선연구』, 송호정『한국 고대사속의 고조선사』, 길림대 장박천(張搏泉)ꡐ명도폐연구속설ꡑ(明刀幣硏究續說), 부찐『고조선의 역사-고고학적 개요』, KBS HD 역사스페셜『한국사, 신화를 깨고 숨을 쉬다』, 백산학보(白山學報),ꡐ동여비고ꡑ(東輿備考-1682), 우실하『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심백강『황하에서 한라까지』, 이덕일, 김병기『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성삼제『사라진 역사 고조선』, 윤명철『우리나라역사지도』, 윤여동『고려와 조선역사의 특급비밀』, 서길수『고구려 역사답사』, 2007『초,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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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거와 현대 문헌에 우리 나라 역사(고조선) 기록

구분

『명사(明史)』 1368-1840

『세계역사지명사전』 1990. 6간

기록내용

조선은 箕子에게 봉하여 준 나라이다. 漢나라 이전에는 朝鮮이라하였다. 일찌기 燕나라 사람 衛滿에게 점거되어 있었으나 漢武帝(世宗)가 이를 평정하고 진번, 임둔, 낙랑, 현토의 四郡을 설치하였다. 漢末에 부여 사람 高氏가 그 땅을 차지하여 국호를 高麗(고구려)로 고쳤다.



조선(korea)......기원 4세기 신라, 고구려, 백제 3개 국가가 건립되었다. (고조선 기록은 삭제되고 3국 시대부터 기술되어 있음 *고조선 삭제 이유 추정-단군 조선은 신화라고 거부하고 ‘기자, 위만 조선‘은 중국인이 들어와 세운 나라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반대)



조선사

*고조선-부여-고구려....

*(고조선 삭제) 신라, 고구려, 백제...



현재 ‘중국 교과서’에도 ‘조선 민족은 예로부터 조선 반도에 거주했다. 기원 전후에 조선 반도 북부를 통치하고 있던 것은 고구려 노예제 국가였다. 후에 조선 반도 서남부와 동남부에는 또 잇달아 백제, 신라 두 노예제 국가가 나타났다’(송기호 『동아시아의 역사분쟁』 2007. 솔출판)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조선 민족이 조선 반도에만 거주한 것으로 한정하여 서술하였고 삼국(三國-高句麗, 百濟, 新羅)이전 고조선과 부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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